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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기록 (2016년 6월 29일, Yosemite National Park) 본문

A Cross-U.S. Trip

3일차 기록 (2016년 6월 29일, Yosemite National Park)

제주 정사부 2024. 12. 7. 23:30

이른 새벽, 나는 가벼운 떨림을 안고 숙소를 나섰다. 어제 실리콘밸리에서 혁신의 숨결을 느꼈다면, 오늘은 대자연의 품으로 뛰어드는 날이다. 벤츠 버스는 새 차 특유의 청결한 내부를 유지한 채 부드럽게 도로를 달렸다. 창밖으로 서서히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멀어지며, 푸른 숲과 완만한 언덕이 시야에 들어왔다. 몇 시간 후 요세미티(Yosemite) 국립공원에 도착하자, 웅장한 바위절벽과 짙은 녹음의 숲, 쏟아지는 폭포 소리와 깨끗한 공기가 한꺼번에 나를 감싸 안았다.

버스에서 내려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엘캐피탄(El Capitan)이라 불리는 거대한 화강암 절벽이었다.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암벽의 표면은 마치 거대한 조각품 같았다. 말라있는 가슴속까지 청량하게 만들 것 같은 공기와, 저 멀리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폭포 소리에 마음이 맑아졌다. 여기서는 기술이나 학문의 발전보다, 수천 년 간 이어져온 자연의 흐름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요세미티 계곡(Yosemite Valley)을 따라 들어갈수록 자연의 스펙터클은 더욱 뚜렷해졌다. 유명한 요세미티 폭포(Yosemite Falls)는 지금까지 내가 본 그 어떤 인공 분수나 수경 시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수십, 수백 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암벽을 때리며 부서질 때, 공기 중에 부옇게 퍼지는 물방울들은 내 피부를 시원하게 스쳐갔다. 폭포 앞에 서 있으니, 세상 모든 고민이 바람처럼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몇 시간 동안 공원 곳곳을 둘러보며 간단한 트레일 코스도 걸어보았다. 발끝을 스치는 낙엽 소리, 머리 위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리고 아직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한 생태계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때때로 다람쥐나 사슴이 훌쩍 지나가며 낯선 방문자를 궁금해하는 듯 보았다. 이런 순간들은 오래된 그림책 속 장면을 꺼내놓은 듯 아늑했다.

점심 무렵, 나는 공원 내 간이 식당에서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를 즐기며 휴식을 취했다. 주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역시 다양한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을 감탄하는 눈빛은 모두 같았다. 국경이나 문화의 차이는 자연 앞에서 무색해진다. 이곳에선 모두가 한 순간의 감동을 나누는 동행자였다.

해질 무렵,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하프 돔(Half Dome)이 멀리서 보이는 전망대를 찾았다. 붉은 노을이 바위 표면을 물들이는 광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했다. 하루 종일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끽하며, 나는 문득 내가 왜 이 긴 여행을 시작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과 학문, 도시의 분주함을 넘어, 결국 인간은 이 거대한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는 과정이 아닐까.

버스에 다시 올라 시동을 걸고, 내일을 향해 출발했다. 요세미티에서의 하루는 자연이 주는 위로와 겸손함을 가슴에 새기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이어질 여정에서 이 기억을 떠올리며, 세상은 단지 경계 없는 무대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