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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기록 (2016년 6월 27일, San Francisco) 본문

A Cross-U.S. Trip

1일차 기록 (2016년 6월 27일, San Francisco)

제주 정사부 2024. 12. 7. 20:03

미국 횡단여행의 첫 장을 열었다. 길고 지루한 비행 끝에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내린 시각, 내 머릿속은 이미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원래는 여기서 곧바로 렌터카를 빌려 도로 위를 달리며 여행을 시작하려 했지만, 시차 적응 문제를 고려해 계획을 바꾸었다. 아직 몸이 무거운 상태로 운전을 강행하는 대신, LA에 도착해서 차량을 빌리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미리 대절해 둔 벤츠(BENZ)사의 신형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낯선 도시를 부드럽게 가로지르는 새 버스의 내부는 깔끔했고, 은은한 새 차 향이 남아 있었다. 이보다 편안한 첫걸음이 또 있을까 싶었다.

버스 창 밖으로 언덕진 지형에 빽빽히 들어찬 빅토리아풍 주택들이 눈길을 끌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독특한 골목과 건물들은 마치 오래된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해안 쪽으로 조금씩 이동하자 선선한 바람과 함께 금문교(Golden Gate Bridge)가 장엄한 실루엣을 드러냈다. 주홍빛 철골 구조물이 안개 낀 만 위에 서 있는 모습은 수많은 사진과 영상으로 익히 봐온 풍경임에도 실제로 마주하니 전혀 다른 감동이었다. 이 다리는 1930년대 대공황기의 산물로, 시대를 넘어 샌프란시스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수많은 여행자들의 메카가 되었다. 다양한 언어를 쏟아내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나 역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 순간을 내 기억 속에 또렷이 새겨 넣었다.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친 뒤 잠깐 눈을 붙였다. 여행 첫날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고자 한 짧은 휴식이었다. 날이 저물자 서서히 도시의 야경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창밖에 펼쳐진 불빛은 각기 다른 높낮이의 언덕 위에 흩어져, 마치 은은한 별빛처럼 도심을 수놓았다. 거리로 나서니 케이블카(전차)가 레일을 따라 경사진 도로를 오르내리며 기분 좋은 딸각거림을 울렸다. 차창 사이로 스며드는 밤공기, 이국적 간판들,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뒤섞여 뿜어내는 생동감에 가슴이 설렜다.

낯선 도시에서의 첫날 밤,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되뇌었다. “이제 미국 횡단이 시작됐구나.” 샌프란시스코의 빛과 바람, 새 차의 향기, 그리고 금문교 아래 잔잔한 물결 소리가 모두 한 편의 서막을 이루고 있었다. 여행이라는 길고 긴 책에서 오늘은 첫 페이지를 넘긴 셈이다. 앞으로 마주할 도시와 사람들, 풍경과 이야기들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감에 잠긴 채, 나는 하루를 마감했다. 이 기록을 남기며, 다시금 마음속에 다짐한다.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라고. 여기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나의 여정은 이제 막 첫 발자국을 남겼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