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쉼표, 제주에서 다시 쓰다!
6일차 기록 (2016년 7월 2일, (Death Valley - Las Vegas) 본문
오늘 하루는 말 그대로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캘리포니아에서 네바다로 넘어가는 여정은 그저 단조로운 사막 풍경과 마른 공기 정도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데스밸리(Death Valley)에 접어든 후, 상황은 완전히 뒤집혔다. 이곳은 북미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온 지역이자, '죽음의 골짜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서운 태양이 내리쬐는 곳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막 한가운데서 폭우가 쏟아졌다. 사막에 비라니, 그것도 단순히 비 정도가 아니라 폭우라니. 비가 오면 그 물기를 빨아들일 식생이 부족한 데스밸리에선 순식간에 물길이 넘쳐나 소형 홍수가 벌어졌다.
우리가 머물기로 했던 호텔은 예상치 못한 폭우로 인해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졌고, 에어컨 가동에 문제가 생겼다. 이곳에서 에어컨 없이 밤을 보내는 것은 생존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였다. 사막의 열기는 낮뿐 아니라 해 질 녘에도 식지 않아, 무방비하게 더위에 노출되면 진정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호텔 측은 더 이상 우리를 수용할 수 없다며 사실상 쫓아내듯 퇴실을 종용했다. 일행과 나는 당황스럽고 불쾌했지만, 이 상황에선 따질 겨를도 없이 짐을 챙겨 나와야 했다.
낭패였다. 라스베이거스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었고, 도로 상황 또한 폭우 영향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차를 몰고 한참을 달리다가 휴대폰으로 숙소 정보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운 좋게도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기 전에 중간 지점쯤 되는 곳에 고급 빌라를 단기 임대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원래 예산보다는 조금 비쌌지만, 지금 상황에서 안전하고 편안한 숙소를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각, 우리는 빌라에 도착했다. 고급스럽게 꾸며진 인테리어와 널찍한 거실, 완비된 주방과 푹신한 침대까지. 그간 여행에서 만나본 숙소 중 단연 최고 수준이었다. 거기다 에어컨은 완벽히 가동되었고, 냉장고에는 기본적인 음료와 생수가 채워져 있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홍수 난 사막 한복판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우리가, 이제는 안락한 소파에 앉아 이 상황을 농담거리로 삼을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전화위복이 아닐 수 없다. 만약 호텔에서 우리를 계속 붙들고 있었다면, 어쩌면 전력 사정 악화로 더 큰 불편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더위와 불안감 속에서 밤을 보냈을 테고, 다음 날 일정에도 지장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뜻밖의 쫓겨남과 홍수 사태 덕분에, 우리는 라스베이거스 인근에서 예상치 못한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이 여행에서 종종 일어난다. 불운해 보였던 사건이 결과적으로 더 나은 기회를 안겨주는 경우 말이다.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극적인 전환은 도로 위를 떠도는 여행자로 하여금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게 한다. 자연의 변덕과 인간의 불편은 가끔 예상치 못한 결말로 이어지곤 한다. 폭우와 홍수, 호텔에서의 강제 퇴실을 거치면서 우리는 한 단계 더 유연해졌고, 즉흥적인 선택이 때로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거실에 모여 오늘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니 모두가 웃었다. "이 정도면 영화 한 편 찍을 수 있겠는데?"라며 장난을 치는 동료도 있었다. 바깥은 여전히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을 테지만, 이 편안한 빌라 안에서 만큼은 내가 원하는 온도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서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불빛을 마주할 것이다. 오늘의 해프닝은 그 순간을 더 소중하게 만들어줄 밑거름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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