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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차 기록 (2016년 7월 3일,Las Vegas) 본문

A Cross-U.S. Trip

7일차 기록 (2016년 7월 3일,Las Vegas)

제주 정사부 2024. 12. 8. 10:03

아침 햇살이 창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올 때, 어제 우여곡절 끝에 정착한 고급 빌라의 거실 소파에서 느긋이 기지개를 켰다. 전화위복으로 얻게 된 이 호사스러운 숙소 덕분에 불편한 기억은 뒤로하고 오늘의 일정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7일차의 목적지는 카지노와 엔터테인먼트의 메카, 네온사인의 도시 라스베이거스(Las Vegas). 전 세계에서 돈과 꿈을 함께 쏟아내는 이곳은, 관광, 비즈니스, 공연, 미식 등 갖가지 욕망이 뒤엉키는 거대한 무대다.

빌라를 나서 차를 몰고 도심으로 들어설수록, 사막의 황량함은 어느새 화려한 조명과 대형 전광판, 초고층 호텔들에 밀려나 있었다. ‘스트립(The Strip)’이라 불리는 중심가에는 카지노 호텔들이 연이어 늘어서 있었고, 각각의 호텔은 마치 하나의 테마파크처럼 독특한 컨셉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떤 곳은 파리의 에펠탑 축소판을 세워놓았고, 또 다른 곳은 베네치아의 운하를 실내에 재현했으며, 이집트 피라미드 모양의 호텔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계 여행을 하는 기분, 바로 이것이 라스베이거스의 매력일까.

카지노에 발을 디딘 순간, 바닥을 뒤덮은 화려한 카펫, 끊임없이 돌아가는 슬롯머신의 불빛과 소음, 그리고 카드 테이블을 둘러싼 진지한 표정의 도박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는 시간 감각을 잃기 쉽다. 시계 없이 24시간 끊임없이 도는 휘황찬란한 환경은, 사람들을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운명의 기회’를 유혹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슬롯머신 앞에 앉아 동전을 넣었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이 도시에 온 이상 한 번쯤은 운을 시험해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결과는 예측대로, 몇 분 만에 호주머니에 있던 잔돈 몇 개가 사라졌다. 하지만 자책할 필요는 없다. 이곳에서 돈은 일종의 입장료이자 공연의 대가일 뿐, 재화가 아닌 놀이의 재료라는 느낌이었다.

라스베이거스가 단순히 ‘카지노 천국’에만 머무는 도시는 아니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이곳은 세계 최대 규모의 컨벤션 센터들이 모여 있는 곳 중 하나로, 국제 회의와 전시가 끊임없이 열린다. 비즈니스맨들과 산업 관계자들이 최신 기술과 상품,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장터이자, 관광객들에게는 또 다른 볼거리와 경험을 제공하는 장이다. 호텔 로비나 컨벤션 센터 근처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휘황한 조명의 뒤편에는 전략적으로 구성된 비즈니스 거래와 만남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낮의 열기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밤이 되자 이 도시는 진가를 드러냈다. 네온사인이 하늘을 향해 춤추듯 빛나고, 거리마다 음악과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친구와 함께 쇼 티켓을 예약해둔 나는 ‘O’나 ‘KA’ 같은 세계적인 서커스 공연을 선보이는 시어터로 향했다. 시르크 뒤 솔레이유(Cirque du Soleil)를 비롯한 다양한 공연 기획사들이 모여, 이 도시에 예술과 기술이 결합한 압도적 무대를 펼쳐놓는다. 수중 무용수, 곡예사, 불가사의한 조명과 음향이 어우러진 공연은 내가 알던 상식을 깨뜨리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라스베이거스에 온다면 공연을 놓치지 말라고들 하는데, 정말 그 말이 옳았다. 카지노를 뛰어넘는 예술적 전율, 이곳은 단지 돈을 거는 곳이 아니라 감정을 투자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밤공기가 한결 부드러워진 거리에서 칵테일을 홀짝이며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어제는 사막 속 폭우로 인한 홍수, 호텔에서의 불편한 쫓겨남, 그리고 뜻밖의 고급 빌라 체험을 겪었다. 오늘은 문명과 예술, 그리고 비즈니스의 총집합인 라스베이거스라는 무대 위에서 또 다른 얼굴의 미국을 확인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피어난 인공의 정원, 밤낮 없이 돌아가는 엔진, 그리고 그 뒤편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이 도시의 참모습이 더 궁금해졌다.

아마 내일이면 다시 다른 도시로 이동할 것이다. 이번 미국 횡단여행은 끊임없이 무대와 배경을 바꿔가며, 나에게 다양한 색채와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는 그 중에서도 극적으로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대자연의 장엄함과 대비되는 인공적 화려함, 도박과 예술, 비즈니스와 휴양이 한데 얽힌 이곳에서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인생 역시 다양한 무대를 거치며 만들어진다. 숲 속에서 느낀 겸손함도, 대도시의 활기도, 그리고 이 화려한 쇼와 베팅의 세계도 모두 하나의 조각이 되어 나를 더욱 다채롭게 변화시킨다.

새벽이 다가올 무렵, 거리의 조명은 여전히 눈부셨다. 라스베이거스의 밤은 쉬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또 다른 풍경이 기다릴 것이다. 인생의 Roulette wheel이 어디로 멈출지 알 수 없듯, 여행도 그날그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테니, 여기에 몸을 맡기고 즐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