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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차 기록 (2016년 7월 6일, Salt Lake City)

제주 정사부 2024. 12. 8. 13:26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선 나는 차량 계기판에 찍힌 지도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장엄한 자연을 무대로 한 며칠간의 여정을 거치며, 마음은 이미 한층 넉넉해진 상태였다. 오늘은 대자연과는 다른 ‘문명’과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를 찾아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바로 솔트 레이크 시티(Salt Lake City), 유타 주의 주도이자 몰몬교로 대표되는 독특한 종교·문화적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사막과 암석 대신 깔끔하게 정비된 도로와 건물이 나타났다. 솔트 레이크 시티는 한눈에 보기에도 계획적으로 설계된 도시처럼 보였다. 직선적으로 뻗은 도로망과 질서정연한 블록 구조는, 이곳이 우연히 형성된 도시가 아니라 특정한 목적과 신념 아래 건설된 장소임을 암시했다. 19세기 중반, 서부 개척 시대에 몰몬교(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신자들은 박해와 추방을 겪으며 끝없는 여정을 계속했고, 결국 이 곳 유타의 대염호(Great Salt Lake) 인근에 정착해 그들만의 신앙 공동체를 건설했다. 브리검 영(Brigham Young)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지휘 아래, 불모지 같던 땅에 도시를 조성하고 개간하는 과정은 말 그대로 피와 땀으로 얼룩진 역사였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템플 스퀘어(Temple Square)에 도착하자, 깔끔하게 관리된 광장과 기념비적 건축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에는 몰몬교의 총본산 격인 솔트 레이크 템플과 탑버나클(Tabernacle), 컨퍼런스 센터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템플은 비신도에게는 내부 관람이 허용되지 않지만, 외부에서 바라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회색빛 화강암으로 지어진 성전(聖殿)은 고요한 위엄을 풍기며, 이 도시의 신앙적 중심이자 상징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주변에 배치된 정원과 조각상, 그리고 경건한 분위기는, 종교의 형태로 꽃핀 인간의 의지와 공동체 정신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나는 안내 책자와 지도를 손에 들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을 곁들이는 자원봉사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광장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안내원들은 상냥했고, 질문에 성실히 답변해주었다. 미국 대부분의 도시와 달리, 이곳에서는 종교적 정체성이 도시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제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며, 더 이상 몰몬교 신자들만의 폐쇄적인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도시의 뿌리와 정신을 이해하는 데 이들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점심 무렵, 근처 카페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며 도시 풍경을 감상했다.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대에 자리한 솔트 레이크 시티는 고지대의 청명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매력적이었다. 자연과 문명, 신앙과 실용주의가 어우러진 이 도시는 지난 며칠 동안 보아온 국립공원들의 풍경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나를 매료시켰다. 이곳에는 화려한 관광 자원 대신, 공동체 정신과 신앙심이 빚어낸 독특한 스토리가 흐르고 있었다.

오후에는 몰몬 태버너클 합창단(Mormon Tabernacle Choir)이 연습하는 모습을 운 좋게 엿볼 수 있었다. 탭버나클 건물 내부는 음향적인 설계로 유명한데, 손바닥을 가볍게 치는 소리도 건물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라고 한다. 이곳에서 울려 나오는 성가와 합창은 단순히 공연이 아니라 신앙의 한 형태로 느껴졌다.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종교적 신념이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어떻게 하나로 묶는지 생각해보았다.

도시를 좀 더 돌아보며, 시청이나 박물관, 그리고 현대적인 쇼핑몰 등을 거쳐 보니 이제는 종교적 색채와 현대문명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역사의 시작점은 몰몬교 신자들의 개척 정신이었지만, 이제 솔트 레이크 시티는 다양한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중부 서부 지역의 핵심 도시로 성장했다. 스포츠나 컨벤션 산업, 대학과 연구 기관 등도 이곳을 활기차게 만들고 있었다.

해가 저물기 전, 조금 더 외곽으로 나가 대염호(Great Salt Lake)가 은은히 빛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먼 옛날, 다른 지역에서 쫓겨난 신자들은 이 호수 근처에서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을 것이다. 지금 바라보는 이 호수는 당시의 풍경을 얼마나 간직하고 있을까. 도시는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고 발전하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정신과 역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대염호는 바로 그 끊임없는 재생과 적응의 역사를 고요히 지켜봐 온 증인처럼 느껴졌다.

오늘 하루,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겪은 체험은 내게 또 다른 종류의 깨달음을 주었다. 미국 횡단여행 중 만난 거대한 자연과, 그 앞에서 조용히 삶을 일구는 인간 공동체. 몰몬교의 신앙과 역사, 그리고 현대 문명이 결합한 이 도시의 모습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자연과 문명, 신앙과 실용 사이를 가로지르는 이번 여정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나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과정임을 다시금 깨달으며, 10일차 기록을 이쯤에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