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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표, 제주에서 다시 쓰다!
요세미티의 산속을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오니, 마치 다른 세계로 건너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덧 5일차, 이곳은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한동안 대자연 속에서 평온함과 위엄을 느꼈다면, 이제는 문명과 화려함이 넘치는 광활한 도시로 들어선 것이다. 빽빽하게 들어찬 빌딩 숲과 수많은 차량들, 유명 인사들의 흔적을 좇는 관광객, 눈부신 해안과 끝없는 쇼핑몰. 자연의 정적과 대조되는 이 도시의 활기는 마치 인간이 만든 또 다른 생태계처럼 느껴졌다.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는 렌터카 사무실로 향했다. 이번에는 택시나 버스 대신 직접 도로를 누비기로 결정한 것이다. 시차 적응 문제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미뤄뒀던 차량 임차를 여기서 실행에 옮겼다. 2대의 ‘엑스프로러(Explorer)’를 ..
이른 아침,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산속 해발 1800미터 지점에 있는 숙소 주변에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소복이 남아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여름 한복판에 이런 풍경을 마주하다니, 대자연은 실로 경이롭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였다. 어제까지는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계곡과 폭포를 즐겼는데, 오늘은 눈 덮인 봉우리들과 상쾌한 산바람이 나를 맞이하니, 마치 하루 만에 다른 계절로 건너온 기분이었다.숙소는 고지대의 작은 산장 형태로, 나무로 지어진 외벽과 포근한 내부 인테리어가 이방인을 환대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맑은 공기와 청량한 새소리가 밀려들었고, 침대에 누우면 머나먼 도시의 소음 대신 바람과 나뭇잎의 속삭임이 귓가를 간질였다. 주인장이 정성껏 관리한 흔적이 곳곳에 ..
이른 새벽, 나는 가벼운 떨림을 안고 숙소를 나섰다. 어제 실리콘밸리에서 혁신의 숨결을 느꼈다면, 오늘은 대자연의 품으로 뛰어드는 날이다. 벤츠 버스는 새 차 특유의 청결한 내부를 유지한 채 부드럽게 도로를 달렸다. 창밖으로 서서히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멀어지며, 푸른 숲과 완만한 언덕이 시야에 들어왔다. 몇 시간 후 요세미티(Yosemite) 국립공원에 도착하자, 웅장한 바위절벽과 짙은 녹음의 숲, 쏟아지는 폭포 소리와 깨끗한 공기가 한꺼번에 나를 감싸 안았다.버스에서 내려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엘캐피탄(El Capitan)이라 불리는 거대한 화강암 절벽이었다.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암벽의 표면은 마치 거대한 조각품 같았다. 말라있는 가슴속까지 청량하게 만들 것 같은 공기와, 저 멀리에서 희미하게 들..
아침 공기가 제법 상쾌했다. 전날 금문교와 도심의 야경을 만끽한 뒤, 나는 일찌감치 눈을 떴다. 오늘의 목적지는 실리콘밸리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스탠포드 대학(Stanford University)과 그 인근의 구글 본사(Google Headquarters). 미국 서부에서 가장 혁신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었다.벤츠 버스에 다시 올랐다. 한 시간 남짓 부드럽게 달린 끝에, 드디어 스탠포드 대학 교정에 도착했다. 넓은 캠퍼스와 스페인식 건축물, 야자수가 어우러진 풍경은 단순한 ‘대학’의 이미지를 넘어, 하나의 문화공간처럼 느껴졌다. 학생들은 자전거를 타고 자유롭게 오가며, 캠퍼스 내 곳곳엔 연구 센터와 아름다운 건축물이 자리했다. 명문 중의 명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은 지적 호기심과 학문..
미국 횡단여행의 첫 장을 열었다. 길고 지루한 비행 끝에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내린 시각, 내 머릿속은 이미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원래는 여기서 곧바로 렌터카를 빌려 도로 위를 달리며 여행을 시작하려 했지만, 시차 적응 문제를 고려해 계획을 바꾸었다. 아직 몸이 무거운 상태로 운전을 강행하는 대신, LA에 도착해서 차량을 빌리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미리 대절해 둔 벤츠(BENZ)사의 신형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낯선 도시를 부드럽게 가로지르는 새 버스의 내부는 깔끔했고, 은은한 새 차 향이 남아 있었다. 이보다 편안한 첫걸음이 또 있을까 싶었다.버스 창 밖으로 언덕진 지형에 빽빽히 들어찬 빅토리아풍 주택들이 눈길을 끌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독특한 골목과 건물들은 마치 오래된 영..
제주 4·3 사건은 제주인들에게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삶의 흔적과 기억, 그리고 정체성에 깊이 새겨진 아픔과 상처입니다. 1948년 4월 3일부터 시작된 이 사건은 무장봉기와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을 포함하며,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지역적 문제에 그치지 않고, 냉전 체제와 한국 사회 내부의 이념적 갈등, 그리고 국가 권력과 국민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낸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4·3 사건의 중심에는 언제나 제주인들이 있었으며, 이들이 겪었던 고난과 회복의 과정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4·3 사건과 제주인들의 고통제주 4·3 사건은 광복 후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발생했습니다. 일본 식민 통치가 끝난 ..
제주도의 독특한 문화적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괸당문화(權黨文化)는 제주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괸당이란 ‘혈연이나 지연으로 얽힌 친밀한 관계’를 의미하며, 이는 가족, 친족, 이웃, 지역 공동체의 결속을 기반으로 형성된 제주 특유의 사회적 구조를 나타냅니다. 괸당문화는 제주의 역사, 자연환경, 생활 방식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현대 제주 사회에서도 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괸당문화의 형성과 배경괸당문화는 제주의 고유한 지리적, 환경적 조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과거 중앙 정부로부터의 거리가 멀었던 환경 때문에 자급자족적인 삶이 필요했고, 이로 인해 가족과 이웃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농경과 어업 중심의 생활을 이어가는 데 있어 협..
제주도의 아침은유난히 특별하다. 해가 떠오르며 오름을 감싸는 안개가 사라질 즈음, 제주의 거리 곳곳에서는 해장국집의 불이 켜진다. 제주 사람들에게 아침 식사는 단순히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한 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 중심에 있는 해장국은, 이곳의 자연과 삶, 그리고 시간이 녹아 있는 특별한 문화적 상징이다.해장국, 단순한 음식이 아닌 제주인의 삶제주도 해장국은 단순히 술을 해장하기 위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바다와 땅,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 새벽녘 어부들이 바다에서 고된 조업을 마치고 돌아와 한 그릇의 따뜻한 해장국으로 몸을 녹이는 모습은 오랜 제주 생활의 한 단면이다. 또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이른 새벽부터 들로 나가기 전에 든든히 속을 채우기 위해 해장..
제주도에 카페가 많은 이유를 숫자나 논리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제주도의 카페는 단순히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가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주 특별한 쉼표가 되는 곳이다. 그곳은 제주라는 섬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와 사람들의 감성이 고스란히 녹아든 공간이다.바닷바람이 살짝 밀려오는 어느 날, 나는 작은 골목길 끝에서 한 카페를 발견했다. 문을 열자마자 퍼지는 커피 향이, 고요히 흐르던 마음을 단숨에 포근히 감싸주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하얀 파도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앉아 있는 이 작은 공간이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제주도의 카페들은 하나같이 그 자체로 이야기다..
푸른 바다와 드넓은 들판이 어우러진 제주도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과 자연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곳이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서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존재가 있다. 바로 제주마다. 제주마는 단순히 작은 체격의 말이 아니다. 그것은 제주의 자연과 역사가 만들어낸 독특한 생명체이며, 제주의 시간을 온몸으로 살아낸 문화유산이다. 제주의 거친 바람과 돌밭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인간과 함께 일하고, 제주의 정체성을 만들어온 제주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역사 속 제주마제주마의 기원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에 따르면, 제주마는 삼국시대나 그 이전부터 제주 섬에 존재해왔다고 한다. 특히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 이후, 몽골마와 제주 토종마가 교배하며 현재의 제주마가 탄생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제주마는 몽골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