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쉼표, 제주에서 다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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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차 기록(2016년 7월 9일/State of South Dakota)

제주 정사부 2024. 12. 8. 21:50

사우스다코다의 목장에서

사우스다코다의 끝없는 평원에 자리 잡은 목장은 1300에이커에 달하는 광활한 땅이었다. 한국 평수로 계산하니 약 157만 평. 숫자로만 보아도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목장에 들어선 순간, 도시의 소음과 복잡함은 완전히 잊혀지고 거대한 대지의 고요함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목장에서는 캐빈을 통째로 빌렸다. 낡았지만 정감 있는 나무 건물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었다. 캐빈 안은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어 마치 오래전부터 여기 살았던 것처럼 편안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드문드문 보이는 소 떼들, 그리고 목장의 한가운데 서 있는 오래된 헛간까지. 모든 것이 그림처럼 완벽했다.

목장주의 환대와 개들의 이야기

저녁에는 목장주와 함께 식사를 했다. 그는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평생을 소 키우는 데 바쳤다고 했다. 고된 일이겠지만 그의 눈빛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밝았다. 그가 해준 스테이크는 직접 키운 소에서 나온 고기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정성스럽게 요리된 고기의 풍미는 도시에서 먹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그는 식사 중간중간 소 키우는 이야기와 목장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의 삶은 단순했지만, 단순함 속에 담긴 깊은 충만함이 느껴졌다.

목장에는 온순하고 충성스러운 개들이 있었다. 매끄럽고 윤기 나는 털을 가진 셰퍼드와 목양견들은 목장주의 든든한 조수였다. 그들은 소 떼를 이끄는 데 능숙했으며, 인간에게 보여주는 신뢰와 애정은 무조건적이었다. 내가 그들을 쓰다듬을 때마다 꼬리를 흔들며 보이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함을 안겨주었다. 그들의 존재는 목장의 고독함을 채워주는 동시에, 나에게도 묘한 위로를 주었다.

하루의 짧음과 아쉬움

목장에서의 하루는 너무나 짧았다. 해가 떠오르고 지는 시간은 대자연 속에서는 한순간처럼 느껴졌다. 이곳에서 7일 정도 머물렀다면 어땠을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목장의 일상 속에서, 도시에서의 바쁜 삶과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저 아침에 눈을 뜨고, 하늘을 보고, 대지를 느끼며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삶이 있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자기 성찰과 여행의 의미

이 목장에서 보낸 하루 동안 나는 내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시에서의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더 많은 돈, 더 높은 자리, 더 나은 평가. 그러나 그런 삶 속에서 나는 정작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쓰고 있었는지 잊고 지냈던 것 같다.

목장의 삶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있었다. 목장주는 매일 아침 소들을 돌보며 대지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의 삶은 거창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충분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소유나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목장에서 보낸 하루는 나에게 그런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행은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본질을 되찾는 과정이다. 목장에서 보낸 하루는 내가 도시에서 잃어버린 균형을 되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 자연 속에서의 고요함은 나를 성찰하게 했고, 그 속에서 나는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의 모습을 어렴풋이 그려볼 수 있었다.

다시 떠나며

아침이 밝자, 나는 캐빈 밖으로 나갔다. 찬 공기 속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 목장은 나에게 단순히 휴식처가 아니라, 새로운 깨달음을 준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배운 것을 가슴에 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목장의 개들이 꼬리를 흔들며 배웅해주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도시의 복잡함 속에서도 이곳의 평온함을 잊지 않겠다고.

사우스다코다의 목장에서 보낸 하루는 짧았지만, 그 하루는 내게 긴 여운을 남겼다. 대지의 넓음과 자연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내 삶의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한다.